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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이 묻고 공학이 답했다”…서울대 공대·의대 20년 ‘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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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edisc 댓글 0건 조회 17회 작성일 26-09-2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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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의학의 기술적 진보는 병원 밖에서 시작하곤 했다.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수술로봇 등 의료의 패러다임을 바꾼 기술 상당수는 의료계가 가진 ‘미충족 수요(Unmet Needs)’를 공학적 해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이를 두고 김영오 서울대 공대 학장과 임재준 서울대 의대 학장은 18일 매일경제와 공동인터뷰에서 “뛰어난 의공학자 1명이 웬만한 의사 100명을 다 합친 것보다도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2006년 시작한 서울대 공대와 의대의 융합연구 사업이 올해로 20년째를 맞았다. 의료기기 개발을 위해 시작한 협력은 인공지능(AI)까지 영역을 넓혔고 어느덧 100건이 넘는 융합연구를 통해 국내 의료 혁신의 중심에 섰다. 두 학장은 이 같은 협력이 개별 연구를 넘어 새로운 연구자와 아이디어를 잇는 ‘융합연구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질문과 답변.

―의대와 공대의 융합연구가 시작하고 20년이 흘렀다. 과거와 비교해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

▷임재준 서울대 의대 학장2006년에는 의료기기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로봇·센서·의료정보·빅데이터를 거쳐 지금은 AI까지 연구 범위가 넓어졌다. 더 중요한 변화는 개별 공동연구를 하는 단계를 넘어 의대와 공대 연구자가 만나 새로운 과제를 만들어내는 융합연구 플랫폼으로 발전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의료현장의 미충족 수요를 제시해도 공학적으로 풀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의사가 문제를 제시하면 공학자가 해법을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 기술이 발전했다. 반대로 공대의 신기술을 의학에 적용하는 연구도 늘면서 협력이 양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김영오 서울대 공대 학장연구에서는 전공의 경계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특히 바이오와 공학은 ‘구조가 기능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단백질과 나노소재 모두 구조에 따라 기능이 달라지고, 여러 단위가 모여 더 큰 기능을 만들어낸다.

이런 공통점 때문에 의학의 문제를 공학이 푸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반대로 단백질·세포·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공학이 배우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다. 생명체의 유동적인 구조를 모방한 신소재나 세포 간 신호전달을 응용한 메모리, 뇌의 정보처리 방식을 본뜬 AI처럼 서로 인사이트를 주고받을 가능성이 크다.

―AI가 등장하면서 과거에는 풀기 어려웠던 문제를 해결한 대표적인 사례가 있나.

▷임 학장 초극소 미숙아의 폐동맥고혈압 예측 연구가 좋은 사례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와 공대 전기정보공학부 연구진이 몸무게 1㎏ 미만 미숙아 1016명의 12년치 자료를 활용해 출생 후 72시간 동안의 산소포화도·혈압·심박수·바이오마커 등을 AI로 분석했다. 사람이 일일이 종합하기 어려웠던 방대한 정보를 함께 분석해 질환 발생을 높은 정확도로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했다.

▷김 학장특히 설명 가능한 AI를 통해 예측에 영향을 미친 요인을 찾아냈는데 기존 의학계가 이해하던 질병의 발생 원리와도 상당 부분 일치했다. 단순히 예측 정확도를 높인 것을 넘어 AI가 질환을 이해하는 데까지 도움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랜 연륜의 의대 교수와 최신 AI 기술을 가진 젊은 공대 교수가 세대를 뛰어넘어 협력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다른 단과대학과 비교하면 의대와 공대의 협력에는 어떤 특징이 있나.

▷임 학장 의대가 여러 단과대와 공동연구를 하지만 공대와의 협력이 규모도 가장 크고 활발하다. 의료현장에는 끊임없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기고 엔지니어링은 그 문제에 솔루션을 제공한다. 임상의 미충족 수요와 공학 기술이 맞닿아 있기 때문에 협력의 접점이 많다.

▷김 학장 공학자에게도 생명과 건강이라는 문제를 직접 다룬다는 것은 큰 매력이다. 공대에 진학한 학생도 의학을 공부하고 의료·헬스케어 분야로 연구 영역을 넓힐 수 있다.

―세계적인 AI·바이오 경쟁에서 서울대 의대와 공대가 가진 경쟁력은 무엇인가.

▷임 학장 한국의 중요한 강점은 방대한 디지털 의료 데이터다. 의료정보를 비교적 일찍 디지털화했고 대형병원에 오랜 기간 환자와 검사 데이터가 축적됐다. 환자가 대형병원에 집중되는 구조 자체는 개선해야 하지만 의료 AI 관점에서는 학습과 검증에 활용할 데이터가 풍부하다는 강점이 된다.

2019년 시작한 차세대 항균제 감수성 검사 연구도 이런 융합의 성과다. 공대의 고속 배양·검사 기술과 서울대병원 감염내과의 임상 수요, 진단검사의학의 전문성이 만나 실제 기술로 발전했고 논문과 창업으로도 이어졌다. 의대·공대와 병원의 공동연구까지 합치면 지난 20년간 융합과제가 100건을 넘는다.

―융합연구를 확대하는 데 가장 큰 병목은 무엇인가.

▷김 학장 연구를 한 번 지원하고 결과를 보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로운 연구는 여러 차례 방향을 바꾸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발전한다. 초기 결과가 좋지 않다고 바로 중단하지 않고 후속 연구까지 이어주는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임 학장 더 근본적인 병목은 두 분야의 언어를 함께 이해하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의학을 어느 정도 아는 공학자와 공학을 이해하는 의사가 필요하다. 상대 분야를 전공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기술이 가능한지는 알아야 제대로 협력할 수 있다.

이규언 서울대 의학과 교수와 수술로봇 ‘다빈치’ [이승환 기자]

이규언 서울대 의학과 교수와 수술로봇 ‘다빈치’ [이승환 기자]
―지금 가장 필요한 융합형 인재는 어떤 사람인가.
▷김 학장 한 손에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다른 한 손에는 다른 분야의 지식을 들 수 있는 ‘양손잡이’형 연구자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두 분야를 완벽히 공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서로 자주 만나 연구하면서 상대 분야의 언어를 익히는 과정이 중요하다.

▷임 학장 현재의 진단과 치료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그냥 한계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 환자의 문제를 꼭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공대에서 누구와 협력할지 찾고 새로운 연구로 이어진다. 융합은 다양한 분야를 아는 것 자체보다 풀어야 할 문제를 분명히 갖고 있을 때 시작된다.

―융합형 인재를 학생 단계부터 키우기 위한 계획은 무엇인가.

▷임 학장 의대와 공대가 과학기술의학 연합전공을 만들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은 교수들이 공동연구를 하면서 서로의 언어를 배우지만 앞으로는 학생 때부터 그 경험을 시작하게 하려는 것이다. 의학을 깊이 이해하는 공학자와 공학적 사고를 가진 의사를 훨씬 이른 시기부터 길러내겠다는 것이다.

―두 대학의 인재 양성 전략에서 융합연구는 어떤 역할을 하나.

▷임 학장 융합연구 프로그램은 인재를 키우는 마중물이자 플랫폼이다. 공대와 의대 교수들이 함께 연구하고 발표하는 모습을 대학원생과 학생들이 보고 상대 분야의 연구를 접한다. 그 과정에서 다음 공동연구자가 생긴다.

▷김 학장 특히 젊은 교수와 대학원생이 이런 환경에 일찍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학문 영역을 넓혀가다 보면 서로 다른 분야의 교집합이 커지고 지금까지 다루지 못했던 문제가 바로 그 경계에서 연구 대상이 된다.

―성과가 늦고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한 연구는 어떤 기준으로 지원해야 하나.

▷김 학장 국립대학은 ‘장기 가능성’을 봐야 한다. AI도 오래전에는 지금처럼 세상을 바꿀 기술이 되리라고 알기 어려웠다. 명맥만 유지하던 학문이 어느 순간 핵심 기술이 될 수 있다. 당장 성과가 예상되는 연구에는 자금이 몰리는 만큼 장기간 가능성을 지켜주는 것이 국립대학의 역할이다.

▷임 학장 우리나라 연구 수준이라면 이제 고만고만한 결과를 하나 더 만드는 데 연구비를 쓰기보다 실패 가능성이 있어도 큰 질문에 투자해야 한다. 야구로 치면 안타 숫자만 볼 것이 아니라 4번 삼진을 당하더라도 5번째에 홈런을 칠 수 있는 연구자를 기다려줘야 한다.

18일 임재준 서울대 의대 학장(왼쪽)과 김영오 서울대 공대 학장(오른쪽)이 서울대 의학도서관에서 학제 간 연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8일 임재준 서울대 의대 학장(왼쪽)과 김영오 서울대 공대 학장(오른쪽)이 서울대 의학도서관에서 학제 간 연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도전적인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어떤 제도를 운영하고 있나.
▷임 학장 의대는 최근 기부받은 연구비 5억원으로 도전적 연구를 지원할 계획이다. 1차 심사는 연구자의 이름이나 지위를 떼고 아이디어만 보는 블라인드 방식으로 하려 한다. 포스트닥이든 저명한 교수든 같은 조건에서 경쟁시키겠다는 것이다. ‘실패해도 괜찮으니 크게 던져보라’는 취지다.

▷김 학장 공대도 연구재단 등에 여러 차례 지원했다 떨어졌지만 가능성이 있는 연구에 다시 자체 연구비를 주는 프로그램 ‘칠전팔기’를 운영하고 있다. 실제 지원한 과제 가운데 일부가 이후 외부 연구비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실패 이후 다시 도전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융합연구가 연구실 밖 산업과 의료현장으로 확장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임 학장 연구·개발하려는 대학병원 의사들에게 시간을 보장하는 제도가 가장 필요하다. 지금은 환자를 하루 종일 보고 밤이나 주말에 시간이 날 때만 겨우 연구하는 경우가 많다. 일정 시간을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공대 연구자와 만나고 기술개발에도 집중할 수 있다.

▷김 학장 대학이 자체 자금을 투입해 시작한 연구 가운데 가능성이 확인된 것은 대학과 정부가 다음 단계로 키워줄 필요가 있다. 현재 의대·공대 공동과제의 연구비는 3000만원 정도다. 대규모 연구를 완성하는 돈이라기보다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는 마중물인 만큼, 장기적 가능성이 보이는 곳에 추가 지원이 필수다.

―새로운 의대·공대 융합연구 과제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나.

▷임 학장 의대 연구자는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보고 공대 연구자는 ‘실제로 풀 수 있는 문제인가’를 본다. 그런데 3000만원이라는 연구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업이 연구자들을 연결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이다. 처음 만난 연구자들이 작은 과제로 가능성을 확인하고 이를 더 큰 연구로 발전시키는 출발점이 된다.

―융합연구를 지속적으로 키우려면 연구자 간 교류도 중요할 것 같다.

▷김 학장 공식 행사를 한 번 한다고 공동연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연구 하나가 탄생하려면 그 사이에 젊은 연구자들이 여러 번 만나 연구를 설명하고 아이디어를 주고받아야 한다. 그런 만남을 반복하다 보면 학생과 대학원생도 상대 분야의 연구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연구과제뿐 아니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기능이다. 결국 대학의 역할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계속 만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공현중 서울대병원 융합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개발 중인 수술 로봇을 한 학생이 시험 작동하고 있다.

공현중 서울대병원 융합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개발 중인 수술 로봇을 한 학생이 시험 작동하고 있다.
―앞으로 두 대학이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할 융합 과제는 무엇인가.
▷임 학장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내년 1월 시작할 ‘과학기술의학 연합전공’​이다. 하버드 의대와 MIT가 함께 운영하는 HST(Health Sciences and Technology) 과정을 벤치마크했다. 핵심은 교수 단계에서 시작하던 융합을 학생 단계로 앞당기는 것이다.

별도 학생을 뽑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공대생과 의대생 가운데 각각 20명 안팎이 참여한다. 공대 학생은 의대 교수 연구실에서 의학과 임상의 문제를 배우고, 의대 학생은 공대 교수 연구실에서 공학과 기술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과정을 이수하면 자신의 원래 전공과 함께 연합전공을 갖게 된다.

의공학적 혁신이 살릴 수 있는 생명의 숫자는 한계가 없다. 의대에는 이미 의료AI 인재와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이 있지만 이번에는 공대와 교육과정 자체를 함께 만드는 것이다. 의학을 깊이 이해하는 공학자와 공학적 식견을 갖춘 의사를 학생 때부터 길러내고자 의대와 공대 모두 핵심 교수진을 투입할 정도로 이 과정에 공을 들이고 있다.

▷김 학장 결국 앞으로의 경쟁력은 전공의 경계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학생 때부터 그런 환경을 제공하면 지금 세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융합연구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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